별하늘을 닮은 필리핀

농구천재갈맥 2026-08-27 08:34 조회 66
곱디고운 명주를 꽁꽁 싸매고 있어도 거스릴 판국에, 까끌까끌한 삼베에 고운 살결 다 상하는 할머니..

어찌 이리 작아지셨을까.. 눈물 마를 새도 없이 가버린 할머니....

몇 시간째 할머니와 그렇게 말도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너희 어머니는 언제 오신다니?"

"아마.. 못 오실 겁니다."

"미친 거 아니니?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장에 오질 않는다고?"

"일단 연락은 드렸어요. 비행기표 알아보고 계시대요."

사실 어머니가 안 오셨으면 했다. 얼마나 마음고생할 지 아니깐...

할머니가 어제 돌아가셨다.

어릴 때부터 나를 안고 업고 한없이 이뻐해주던 할머니가 어제 돌아가셨다.

바짝 쫄은 김치찌개를 좋아하게 된 것도,

7살 때부터 고스톱을 치게 된 것도,

습관적으로 옆 사람의 가슴을 만지면서 자게 된 것도, 다 우리 할머니 덕분이었다.

집안의 장손이라며 유독 귀여워해주셨던 할머니마저 옆에 없으니, 세상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이제 몇명이나 남았을까라는 생각에 손을 펴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본다. 하나, 둘..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손가락들이 무안한 만큼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을 볼 낯이 없다...

어머니는 고된 시집살이를 하셨다. 부산에서 손꼽히는 부자의 넷째 딸로 태어났지만, 가난해 중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집안의 장남과 결혼하셨다. 아버지의 청소년 시절은 일용직 노동과 검정고시 준비로 낮밤이 따로 없으셨고 머리는 좋으셨지만 가난했던 아버지를 위해 하늘에서 기회를 주셨다.

서울대와 공군사관학교, 부산해양대학교를 붙은 아버지는 전액장학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부산해양대학교로 뒤늦게 입학하셨고 어머니를 만나셨다.

고모들은 어머니를 달가워하지 않아했고, 지금은 싫어한다. 고된 시집살이를 현명하게 이겨낸 어머니가 얻은 것은 시어머니의 사랑과 고모들의 질투였고, 그런 질투어린 시기심이라고 하기엔 지나친 돈요구와 어머니에 대한 모함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까지 멀게 만들 정도였다.

할머니는 그런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내내 눈물만 흘리시다 힘겹게 돌아가셨다. 때마침 해외여행을 가 계셨던 어머니는 할머니의 임종을 곁에서 보지 못하셨고, 장례식장에도 늦게 오신 것이다.

2013년.. 지독했던 그 해,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많이 잃었다. 선산에 묻어드린 할머니와 가슴 속에 묻은 채원이까지..

아무리 둘러봐도 아픈 것으로만 가득찼던 주변을 떠날 필요가 있었다.

회사는 그만뒀고, 결혼자금으로 준비했던 목돈도 있었으니.. 갈 곳만 정하면 되었다.

아프리카? 남미? 가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앞서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고생길이 훤히 보였다.

마음만 지친 게 아니라 몸도 많이 지친 상태라 편하게 쉴 곳이 필요했다.
역시 구관이 명관인지라, 가본 곳이 편하였고 가본 곳 중에 가장 즐거웠던 곳이 필리핀이었다.

가끔 떠오르는, 잊지 못할 하늘이 있다.

할머니를 선산에 모시고.. 이틀 후, 세부로 향하는 비행기 창가자리에서 조그만 창을 통해 바라봤던 반짝이는 별하늘.

그 조그만 창이 세상에 조금 열린 작은 내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별하늘이 보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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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농구천재갈맥글쓴이 2026-08-27 09:15
필리핀 이야기 시작~
농구천재갈맥글쓴이 2026-08-27 09:26
주말부터 쓰려고 했는데.. 일에 집중이 안 되서 결국........... ㅠㅠ
아직아프데 2026-08-27 10:30
시작이 좋다
elhazaddd 2026-08-27 11:34
제 마음의 고향 필리핀이군요. 좋은 글 기대할게요 ^^
사나이창공 2026-08-27 12:30
시작부터 남다름 ㅋ 부담 갖진 마
Hhgfty13 2026-08-27 13:10
화이팅!
천년고찰복상사 2026-08-27 14:27
존글!